EP·8
오리엔테이션 첫 날·
학생들 사이에서는 설렘이 넘치는 시기지만 교수들 사이에서는 수많은 업무가 쏟아지는 시기다·
그래서 바이올렛은 여느때처럼 예민했다·
날렵한 눈매 밑에 깔려있는 다크서클이 많은 업무의 양을 방증하는 듯 했다·
꾹꾹 눌러오던 예민함은 지금 폭발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원흉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름이 뭐죠·”
“플란입니다·”
플란·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색의 눈동자가 인상적인 신입생·
‘분명 이 녀석이야·’
바이올렛은 오리엔테이션 도중 자신의 투영 마법이 간섭받았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마법사로서 보유한 기감(氣感)이 눈 앞의 남학생이 범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도중 멋대로 끼어들어었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모르겠군?”
“······아아 그렇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범인의 태도는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일부러 이러는건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태도를 보이며 바이올렛의 의문을 쳐냈다·
‘거짓말까지해?’
그러나 곧이 곧대로 넘어갈 바이올렛이 아니다·
그녀의 기감은 지금껏 틀렸던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니 학생의 말보다는 자신의 기감을 신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나봐요· 오리엔테이션에 끼어든 걸로도 모자라서 시치미까지 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정말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소년의 표정이 바이올렛의 얼마 안 남은 인내를 끊어버린다·
버럭 소리라도 치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은 것은 문득 다른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와서였다·
“바이올렛 교수!”
고개를 돌려보니 오드리 교수가 복도 저 편에서 자신을 부르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깔끔한 정장에 위로 동그랗게 올려묶은 금발 머리카락·
품이 넓은 로브에 고깔모자까지 쓴 바이올렛과는 여러모로 대조되는 외양을 가진 교수였다·
그러고보니 오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었지 그 약속이 이제서야 떠오른다·
가까이 다가온 오드리가 바이올렛과 플란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았다·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무엇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눈치였다·
“바이올렛 교수· 슬슬 우리도 점심 먹어야죠·”
“아··· 잠시 학생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아 그런가요·”
이해했다는 듯 오드리는 팔짱을 끼고 복도 한 켠에 몸을 기댔다·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다가 문득 눈동자를 굴려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한 마디 거든다·
“학생이 뭘 이해하지 못했나보네요·”
바이올렛이 고개를 절레절레젓는다·
“아뇨 그런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이건 제 권위를 향한 도전이라고요·”
“······권위를 향한 도전?”
오드리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추가로 물었다·
바이올렛이 예민한거야 뭐 익숙하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는건 흔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래요?”
“·······”
바이올렛은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 뿐 입을 열지는 않는다·
질문의 당사자인 오드리에게는 시선조차 주지않는다· 여전히 학생을 노려보는 채였다·
“학생이 직접 이야기하세요· 무슨 짓을 했는지·”
그게 바이올렛의 한마디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쯤되자 오드리는 오늘 점심 메뉴보다 바이올렛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바이올렛·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오드리 교수·”
“네·”
“교수의 마법에 간섭하려했던 학생들은 전부 어떻게 됐죠·”
“학생이 교수의 마법에 간섭··· 중징계를 받았죠· 아니 잠깐만·”
바이올렛의 말을 곱씹던 오드리가 눈을 휘둥그레떴다·
“쟤가 그랬다고요?”
“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바이올렛은 불쾌했다·
허나 오드리는 고개를 젓는다·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오드리 교수· 저 학생 알아요?”
“네· 알죠· 잠시 이쪽으로···”
플란을 우두커니 복도에 세워두고서 오드리가 바이올렛을 복도 한 구석으로 데려간다·
“지금 저 플란 학생 말하는거죠?”
“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쟤는 남의 마법에 간섭하고 막 그럴 깜냥이 안 돼요·”
그럴 실력이 안 된다고?
그럴 리가· 보란듯이 바이올렛의 마법에 간섭해서 투영을 잠시 끊어놓았는데·
“오드리 교수님은 저 학생을 자세히 아시나봐요·”
“네· 그럼요· 신입생 학생회날 저에게 모르는걸 질문하러 왔었으니까요·”
“질문?”
눈을 가늘게 뜨는 바이올렛을 향해서 오드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처음에는 신입생 환영회날부터 질문을 하다니 이렇게 기특할 수가 있나· 그렇게 생각을 했죠·”
“네네·”
“그때 가져온 교재가 기초 마법 이론이었어요· 그마저도 이해 못하고 졸았는데 바이올렛 교수님 마법에 간섭했다니 말이 안 되잖아요·”
이야기를 듣는 바이올렛의 눈동자가 점점 휘둥그레진다·
‘그럴 수가 있나?’
만약 오드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그가 바이올렛의 마법에 간섭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것좀 보세요·”
바이올렛의 표정이 영 탐탁치 못해서였을까·
오드리가 옆구리에 끼고있던 서류 뭉치를 펄럭거리면서 무언가를 보여준다·
학생들의 정보가 적혀있는 자료에서 오드리는 플란의 이름과 등급을 찾아내 바이올렛에게 보여준다·
[ F ]
“······!”
플란의 등급은 가장 낮은 F였다·
‘내가 착각했나?’
상황이 이쯤되니 바이올렛도 자신의 기감이 틀렸나 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간섭’이라는 것은 그 대상을 이해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전제로 깔고 진행된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간섭하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투영 마법의 계열 바이올렛이 출력하는 마나의 양·
F 등급의 신입생이 그 전부를 이해하고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불가능하다·
오드리가 바이올렛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그리고 정 궁금하면 내일 테스트에서 또 지켜보면 되죠· 그거 어차피 바이올렛 교수 담당이잖아?”
“음··· 네·”
바이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드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가 느꼈던 것은 더없이 정순한 마나· 물 흐르듯 부드러워서 사전에 차단해야겠다고 생각조차 못했던 감각·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감각 하나하나가 일개 신입생에게서 느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딘가가 마음에 콱 걸리지만 아직 물증이 없다·
결국 바이올렛은 멋쩍게 머리를 긁으면서 플란에게 다가갔다·
“가보세요· 그래도 계속 주시할거지만·”
그런 짤막한 말 한 마디와 함께 그에게 사탕 하나를 쥐어 주었다·
괜히 붙잡아둔 것에 대한 미안함인건지 너를 표적삼았다는건지 의중이 애매했다·
플란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주머니에 사탕을 쑤셔넣은 뒤 복도를 떠난다·
‘···정말 마녀같군·’
고깔모자에· 사탕에· 다크서클에·
플란의 감상은 고작 그러했다·
◈
‘주의해야겠군·’
학생과 교수의 수준차이는 하늘과 땅차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지·
상급자에게 찍히는 것은 좋지 않다· 학생과 교수 사이에서 학생인 입장이라면 더더욱·
‘아리엘·’
‘죄송합니다 카플란 교수님·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아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만·’
‘정말 죄송합니다 교수님·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조수들을 부리던게 엊그제같은데 눈떠보니 내가 학생이다·
그래도 아카데미에 몸담았던 시절이 있었기에 방금과 같은 상황에서 임기응변할 수 있었다·
대충 기억나는 제자의 모습을 따라했는데 그게 효과가 있을 줄이야· 따라하는 내내 몸에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제자 녀석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있으려나·
“우선 테스트부터·”
아무튼 지금 가장 신경써야하는 것은 내일 있을 등급 테스트·
현재로서는 그게 최우선 과제이자 가장 신경써야할 점이었다·
테스트는 어떤 마법의 어떤 분야를 어떤 식으로 시험하는가·
사실 그런 것들은 차선적인 것이다· 마법 이론따위는 이미 머릿속에 있으니·
다만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이론을 구현할 방법·’
지금 보유한 마력과 신체는 그 이론들을 구현하기에 꽤 부족하다· 아니 완전히 부족하다·
꿈만 꾸는 이가 몽상가에 불과하듯 이론만 가진 마법사는 반쪽에 불과할 뿐이다·
앞으로 키워나갈 신체를 어디서 단련할 것인가·
스크롤은 사용이 허용되는가· 허용된다면 어디서 구할수 있는가··· 등등 생각할 것이 많다·
그런 것들을 고민하는데 한 구석 나무둥치에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다·
그 붉은 뒤통수는 아무리봐도 베키였다·
한 손에는 딱딱해보이는 빵· 다른 손에는 우유·
먹을거리가 무엇인지와는 별개로 혼자 비맞은 생쥐처럼 먹고있으니 영 초라하다·
“마침 잘됐군·”
발걸음을 돌렸다·
◈
ㅡ쟤 완전 거지야·
강의실을 빠져나가자마자 귀에 들려온 소리다·
그 말만 듣고도 베키는 플란에게 누가 말을 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리아 폰타인·
그녀가 베키를 미워하던 역사는 꽤 길다· 아주 어릴 적부터 평민이라는 이유로 베키를 배척했으니·
기초 마법기관을 졸업하면서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결국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또 마주쳤다·
싫다· 분하다· 화난다· 짜증난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딱딱한 빵을 한 입 베어문다·
묵묵히 아카데미를 다니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어뜯는다면 무조건 베키쪽의 손해가 더 크다·
ㅡ말도 남자애들한테만 걸어· 의도가 너무 뻔하지·
그 말도 억울하다·
너희가 따돌리니까 남자애들이랑 지낼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ㅡ신입생 환영회때도 향수 잔뜩 뿌리고 왔었잖아· 가난한 티 안내려고·
···그래 그건 맞지·
하지만 남에게 민폐끼치는 냄새가 날까봐 향수를 뿌렸을 뿐이다·
그저 그렇게나 단순한 의도였을 뿐인데·
‘향이 이상한가?’
문득 소매 부분을 코에 대고 향을 맡았다·
사실 좋은지 나쁜지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녀 수중에 있는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중에선 이게 가장 저렴했을 뿐이다·
ㅡ다들 쟤 싫어해· 주제를 모르니까·
하지만 그 말만큼은 정말 강하게 부정하고 싶었다·
제 주제만큼은 정말 잘 알고 있다·
주제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있기에 점심시간에도 이렇게 혼자있지 않은가·
“켁켁···”
평소에도 딱딱했던 빵이 오늘따라 더 딱딱하다· 목이 막혀서 그녀는 제 가슴팍을 두드렸다·
다른 손에 들려있는 우유를 마시면서 베키는 그 다음 들었던 이야기를 되짚는다·
ㅡ나도 귀족은 아니다만·
플란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되짚으니 저도 모르게 다시 눈을 깜빡거리게 된다· 대체 뭐였을까·
귀족이 아니라고?
플란이 거주하는 대저택을 보았는데 플란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하녀장을 보았는데· 귀족이 아니야?
플란이 그렇게 내뱉은 이후·
아리아를 비롯한 여자애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베키도 후다닥 도망쳤었다·
그래서 그는 왜 그런말을 했을까·
빵을 또 한 입 씹으면서 베키는 이런저런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다 불꽃 튀듯 떠오르는 한 가지·
“나를 위해서?”
혹시 본인을 편들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거라면?
“······그건 좀 아니지·”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시 골몰한다·
이것도 생각해보고 저것도 생각해보다가 문득 그의 가문 문양이 떠올랐다·
‘타오르는 검·’
아무리 생각해도 기사 가문의 문양으로 생각되어진다·
뭐 기사 가문의 남자애가 마법학부를 다니면 숨기고싶을만도 하지·
그래 그런거야·
‘그래도 혹시···’
조금 아주 조금은 자신을 편들어주려는 이유도 있었을까·
다시 우유를 한 모금 머금고 베키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 품 속의 손거울을 꺼냈다·
때탄 거울속에 비치는 것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붉은 머리카락에 분홍빛 눈동자·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이 비슷할수록 평민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하니 어떻게 보더라도 영락없는 평민이었다·
‘······그래도 좀 예쁜 편인가?’
그렇게 생각한 찰나·
“잠시 괜찮나·”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플란이 나타나서·
풋ㅡ!
화들짝 놀란 베키는 우유를 허공에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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