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3
토벌제 예선이 끝난 후 이변의 파도에 휩쓸린 것은 학생들 뿐만이 아니었다·
“저기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밀지는 말아야지 이 사람아! 비켜!”
“총무과장 아니다· 그냥 총장을 잠깐만 만나게 해주시오!”
상인들이 현재 바쁘게 마법 학부 건물을 기웃거렸다· 상계에서 흔히 ‘큰 손’이라고 불리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애초에 경기를 즐길 목적으로 아카데미에 방문하지 않았다· 관심사는 오로지 하나· 본인들의 재산을 눈덩이처럼 굴려줄 영웅· 특히 기사생도 쪽이다·
하지만 예선에서 ‘마법 학부의 1위 통과’라는 너무나도 큰 이변이 발생했다·
이들도 눈이 있으니 본 것이 있고 또 봐버린 이상 자연스레 서는 판단이 있었다·
‘무조건 해 볼 만한 장사다·’
‘어떻게 되든 간에 미리 길은 터 두자·’
결국 돈을 끌어모으는 것은 힘이다·
이제 막 예선이 끝났을 뿐이지만 마법 학부가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토벌제 예선은 그 ‘힘’을 관찰하고 판단하기에 제격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 아수라장이었다·
그런데 그때·
“다들 이러실 필요가 전혀 없는데·”
한 여인이 나타나 그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눈밭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닿으면 베일 듯한 단발머리 바늘에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차가운 인상·
그녀가 자신을 직접 소개했다·
“마셀린 상회의 대표· 다나 마셀린이에요·”
그 말에 다들 미간을 좁혔다· 마셀린 상회 그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기에·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그들의 예상과 크게 달랐다·
“마법 학부 내부의 유통권은 이미 마셀린 상회가 독점했어요· 그러니까 상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저를 거쳐서 하세요·”
“···?”
듣던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벌써 독점을 했다는 말이요? 예선이 끝나자마자 달려왔는데···· 어느 틈에···?”
“아 저는 예선 전에 미리 투자했어요·”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저 신기했다·
예선 경기 전까지 마법 학부가 증명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어떤 점을 보고서 미리 투자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마셀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심정이 전부 이해가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죠?”
그녀는 스스로조차도 조금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사람 같지 않다는 말· 원래 자주 들어요·”
마셀린·
혈귀들 사이에서 그녀는 마이에브라 불린다·
◈
늦은 저녁 나는 총장실로 향했다·
마법 학부 총장 코네트가 나를 호출했고 현재는 그 요청에 응해주는 중이다·
‘삼일·’
본선은 고작 삼일 뒤 곧바로 시작된다·
최고의 삼 일을 보낼 방법 마법 학부가 본선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일 방법· 나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고민했다·
그러나 아카데미 내부에는 변화가 이미 크게 일어났고 벌써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붉은 융단이 깔린 복도를 걷던 도중 그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마법사 하나가 나를 마주하고 흠칫 멈춰서더니 대뜸 물었다·
“저기 혹시 내일 비 오나요?”
“····”
심각할 정도로 뜬금없는 맥락이라 무시했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이 많아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맥락이 없는 이들은 또 마주할 수 있었다· 총장실이 있는 층으로 도달하기 위해 워프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앞에서 여자 마법사 둘이 수다를 떨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여긴 복도가 길어도 너무 길어· 다리 아파 죽겠다니까·”
“인정·”
“인정만 하지 말고 네가 좀 바꿔봐·”
“내가 무슨 플란이야? 말한다고 되게·”
이젠 일면식조차 없는 이들의 입에서도 내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들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그녀들이 개구리처럼 뛰어올랐다·
“뭐 뭐 뭐야!”
“플란···! 플란이잖아!”
그 요란한 반응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무시하려 했으나 그들의 입이 더 빨랐다·
“저 저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짧고 간단하게 해라·”
“내일 마탑에서 마나 조응력 실험이 있잖아· 그거 어떻게 돼? 성공해?”
또 엉뚱한 맥락· 심지어 의견을 묻는 것도 아니다· 그녀가 질문하는 것은 ‘결과’였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이전 세계와 비슷한 귀찮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앞으로 증명해낼 것에 비하면 예선 1등 따위는 애들 소꿉놀이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걸 왜 나한테 묻지·”
“누구라도 너한테 물을걸? 트리비아 안 봤어? 온통 네 이야기뿐인데·”
트리비아·
그러고 보니 그건 아직 펼쳐보지도 않았다·
이 공책은 알람이 있으면 푸른 빛으로 한 번 깜빡인다· 한데 지금은 연락이 얼마나 쇄도하는지 아예 푸른 불이 계속 켜져 있는 상태다·
트리비아를 펼쳐보았다·
[ 돈 버는 법 알려준다· 다음 예측 열리면 마법 학부의 토벌제 우승에 전 재산 걸어라· ]
[ 오늘 마법 학부 학식 나만 맛없었냐· ]
[ 플란한테 바꿔 달라고 해· ]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군·”
고개 한 번 끄덕이고 넘어가자고 분명히 언급했을 텐데 순순히 응해주는 녀석이 없었다·
“아 플란! 플란 학생!”
워프해서 내려온 누군가가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알이 조그만 뿔테 안경 코네트 총장의 비서였다·
“다들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어서요!”
◈
“아···· 플란 학생 정말 고생했어요·”
비서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 안경을 고쳐 쓰면서 내게 생긋 웃어 보인다·
눈빛에는 친절함이 가득하다· 예전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태도였다·
나는 착석하며 조용히 되물었다·
“총장님께서는·”
“아 금방 오실 거예요·”
총장의 요청에 응해서 온 건데 정작 코네트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인원도 많다· 비서 교수 기자 처음 보는 인물···· 코네트를 독대하는 것을 예상하고 왔는데 사실상 큰 규모의 회의였다·
“프 플란 학생!”
주황빛 머리칼의 여자가 나를 반긴다· 메르헨 일보의 마법부 부장 세피아였다·
비서가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메르헨 일보 부장 세피아님도 와계세요·”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이런 일이 생겼는데 절대로 빠질 수 없죠!”
세피아는 조금도 진정하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우선 플란 학생· 현재 여론이 어떤지는 대충 알고 계신가요?”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가 없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발언해왔고 조금의 오차도 없이 증명했다· 뒤에 달라붙을 여론은 굳이 보지 않아도 뻔하다·
“플란 학생에 관한 특보를 저희가 직접 내보낼까 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이미 난리예요!”
세피아가 허공에 아주 커다란 종이를 펼쳤다· 많이 떨리는지 종이는 그녀가 손가락을 세 번 튕긴 다음에야 전부 펴졌다·
잠시 후 장문의 게시글이 활자로 옮겨졌다·
분량은 많았지만 내용은 단순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래 내가 걸어온 행적이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정리 방식이 묘하게 익숙하다·’
등급 테스트 재시험부터 시작해서 교수 대신 설명을 했던 것 그리고 시험 기준을 바꾸고 대표로 선발되기까지의 과정····
사족이지만 어떤 논문들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적혀있었다· 이건 베키만 알고 있을 터인데·
“이게 글 전문이고 중요한 건 반응이에요!”
세피아의 외침에 기록지가 이번에는 학생들의 반응을 활자로 담아낸다·
[ 와 그냥 처음부터 남달랐네 ]
[ 근데 마법 학부 학생은 경기 직관 불가능했잖아· 운이 좋아서 1등 했던 거 아니야? ]
[ 운도 그 정도면 실력이겠다 이 멍청아 ]
[ 토벌제 본선 얼른 보고 싶다···! ]
나쁜 반응이 거의 없었다· 기록지를 바라보는 세피아는 황홀경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플란 학생의 이름이 토벌제에 관련해서만 언급되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의 유행처럼 일상적인 글에도 꾸준히 언급되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엄청난 돈이 될 겁니다!”
나이가 제법 있는 남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끼어들었다·
뒤늦게 머쓱했는지 그가 헛기침하며 자기소개했다·
“허허허···· 죄송합니다· 기뻐서 그만 저는 총무과장입니다·”
그가 손가락을 튕겨서 기록지에 개입했다· 많은 수의 명단이 위에서 아래로 주욱 늘어진다·
“마법 학부와 교류를 희망하는 상단들입니다· 마셀린 상회를 제외하면 전부 예선 이후 굴러들어온 겁니다·”
마법 학부의 회계를 담당한 그는 금덩어리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모두 플란 학생 하나만 보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생의 화제성이 커지는 만큼 뒤에서 돈이 자연스레 쫓아오고 있어요·”
총무과장의 말에 비서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판이 커지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증명하고 플란 학생의 행보가 계속 그러했죠· 이번 본선은 저희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비서의 말에 나는 조용히 턱을 문질렀다·
“적극 지원이라···· 어떤·”
“학부 차원에서 같이 판을 키워봐요· 플란 학생의 입장이 이번에는 마법 학부 전체의 입장이 되는 거예요·”
건방지다·
나도 모르게 그리 내뱉을 뻔했다· 난 마법 학부의 지위가 나보다 높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참았다·
마법 학부의 위상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세피아가 들떠서 말을 이었다·
“이 정도까지는 예상을 전혀 못 했기에 편집부는 완전 난리가 났어요· 아 물론 기쁜 쪽으로요!”
총무과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플란 학생 보도할 때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대로라면 마법 학부 내에 여러 시설을 새로 유치할 수 있을겁니다·”
“잘하고 말 것도 없어요· 지금은 있는 그대로만 적어서 내보내도 반응이 엄청 뜨거우니까요· 그러니까····”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세피아가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매듭지었다·
“···플란 학생 지금처럼만 해주세요!”
비서도 옆에서 안경을 밀어 올리며 아주 정중한 말투로 내게 부탁했다·
“아 그리고 단독 취재를 몇 번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토벌제에 관한 포부 계획···· 마법 학부에 엄청난 이득으로 돌아올 거에요·”
비서가 손가락을 튕기자 기록지에 물품들이 적힌다· 금화 화분···· 대부분 선물이었다·
“보세요· 몇몇 상단은 교류를 원한다면서 아예 선물까지 주고 돌아갔어요·”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거절하지· 또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비서의 말이 토막 나고 정적이 내려앉는다·
“선물받은 재화의 활용처 역시 내가 정하지·”
모두 열의를 갖기 시작한 것이 결코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런 방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목표까지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늘 그랬듯 내가 원하는 목표까지 도달하는 법을 알고 있다·
“기사 학부에 전부 기부하도록·”
“···!”
모두의 표정이 일시에 멍청해졌다·
이번 토벌제가 ‘최선을 다해서 승리했다’ 정도로 끝나지 않도록 나는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따라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안쓰럽다는 말도 꼭 덧붙이고·”
총장실에서는 더 이상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스칼렛과의 오찬까지 하루·
···나는 그녀의 표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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