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4
“마법 학부가 받은 선물을···· 모조리 기사 학부에 넘기자고요?”
비서가 경악했다·
“플란 플란 학생! 그랬다간 교류할 마음이 있었다가도 사라질 겁니다!”
총무과장의 얼굴도 창백해진다·
그러나 나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마법 학부가 진정한 일류로 도약했을 시점에 ‘내 덕분이다’라고 주장하는 녀석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짜증만 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를 증명한다·
몸과 세계가 바뀌어도 내 신조는 바뀌지 않는다·
허공에 걸려있던 기록지가 힘없이 바닥으로 처박힌다· 메르헨 일보 편집부 부장 세피아는 아예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이었다·
세피아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그 그 그럼···· 남은 세 대표 취재만이라도 괜찮을까요? 사실 이미 약속을 잡아뒀는데·”
“당연히 안 돼·”
“알았어요· 취소할게요· 대신! 선물이라도 그냥 얌전히 받는 걸로 해요·”
“도대체 뭐가 그리 두렵지·”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뱉을 때마다 세피아는 실시간으로 시들해져 갔다· 그녀가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평판···· 플란 학생 지금부터는 평판도 잘 관리해야 하지 않겠어요?”
세피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좀 귀찮고 어려워도 미래를 향해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평판을 좀 예쁘게 깎아보자구요· 이거 하나 정도는 잘 만들어 둬야죠·”
“좋다라 도대체 어떤 점이·”
“만약에 플란 학생이 나중에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거나 학부 차원에서 무언가를 진행할 때· 다들 의욕을 가지고 쫓아올 거 아니에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피아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지 않았다·
“토벌제 성적이 안 좋아도 살아나갈 방법을 만들어두자· 내게는 그렇게만 들리는데·”
“어···· 뭐···· 그러니까···· 하하하····”
“필요 없다·”
“예···?”
세피아를 향해 내가 해줄 말은 많지 않았다·
“우린 마법사지· 사기꾼이 아니라·”
“그건···· 그렇죠····”
세피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애초에 그녀가 납득하는 선택지 말고는 없었다·
비서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입술을 떼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사실 총장님께서도 플란 학생이 하라는 대로 따르라고 말씀하셨었고·”
“그런 말씀을·”
“네· 당사자는 몰랐나 보네요· 총장님이 플란 학생만 예뻐한다는 소문도 돌 정도인데·”
나는 코네트의 역안과 여유로운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그녀가 내게 보내주는 무한한 신뢰가 가끔은 나조차도 의문스럽다·
뭐 마법사는 마법사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일단은 그렇게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예· 당분간 대놓고 편애 좀 하겠습니다·”
“···!”
불현듯 코네트의 음성이 들려왔다· 총장이 어느샌가 상석에 착석해있는 채였다·
표현 그대로 ‘어느샌가’다· 그녀는 순간 이동을 사용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총장은 모두에게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1등으로 예선을 통과했는데 그 정도는 문제없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코네트는 평소처럼 여유로운 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그냥 지켜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토벌제에 관해서는 어차피 플란 학생보다 더 능력 좋은 마법사가 없을 것 같으니·”
총장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비서 총무과장 메르헨 일보 부장···· 모두 코네트에게 바쁘게 보고를 올렸다· 코네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와중에도 코네트는 나만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기묘한 역안이 나를 꿰뚫을 듯하다·
잠시 후 코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다들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나머지는 플란 학생과 이야기 나누지요·”
그녀가 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둘이서 오붓하게·”
◈
또다시 코네트를 독대하게 되었다·
나는 코네트가 질문할만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대충 예상해서 추렸다·
경기장 구조에 간섭했던 것 환상수의 회로를 들여다본 것···· 그런 질문들이 아닐까 싶은데·
“1학년이지요· 플란 학생?”
코네트의 첫마디는 다소 뜬금없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취미는?”
“마법 정도·”
이후로도 코네트는 내게 경기에 관한 어떤 것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목소리로 사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물어갈 뿐이다·
“옷에는 관심 없으신지요·”
“그럭저럭입니다·”
“아하 그럼 여기·”
내게 검은 명함 하나가 날아들었다· 황금빛 글씨로 ‘마녀의 숲’이라고 적혀있다·
“언제 한 번 방문하셔서 원하는 대로 고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옷이든 장신구든·”
마녀의 숲· 의류를 취급하는 가게 이름인 모양이다· 우선 그것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예선을 1등으로 통과하셨더군요·”
드디어 본론인 모양이다· 나도 그녀도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예·”
“완드는 이미 해주기로 했었고···· 제가 플란 학생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는데·”
코네트가 새롭게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의 반을 좀 더 세분화할까 합니다· 나이나 학년에 구애받지 않고 마법을 가르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자연스레 필요해졌지요·”
가만히 듣던 중 총장이 선뜻 말했다·
“본선도 이렇게만 하시지요· 그럼 플란 학생 밑으로 반을 하나 꾸려보겠습니다·”
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이었다· 나는 코네트의 역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학생들을 맡긴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일례로 이전 세계에서는 위험한 사상을 가진 인물이 일류 학생들을 범죄자로 키워낸 대사건도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조용히 되물었다·
“···반?”
“예· 플란 학생이 이끄는 반·”
코네트는 조용히 검지손가락을 펴서 자기 눈꺼풀을 두 번 두드렸다·
“제 안목은 틀렸던 적이 없어서 말이지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것보다 요구사항이 몇 개 있습니다·”
원하는 것부터 받아내기로 했다·
◈
“제법 마음에 드는군·”
총장실을 벗어나며 플란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첫째 삼일간 네 명이 함께 지낼 수 있는 최고급 숙소를 마련할 것· 둘째 제시간에 식사를 조달할 것·
코네트에게 요구한 두 가지는 다음과 같았고 그 전부를 흔쾌히 약속받아냈다· 이로써 본선을 제대로 준비할 여건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아 플란·”
그때 바이올렛이 플란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녀는 총장실 밖에서 줄곧 대기하던 중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플란을 만나기 위해서·
바이올렛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만나네요· 우연히·”
“볼일이라도·”
“아 뭐 별건 아니고요·”
바이올렛은 우선 열쇠부터 하나 내밀었다· 그걸 바라보는 플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연구실 열쇠에요· 본선 준비하면서···· 뭐 쓰세요· 시설 사용도 마음대로 하고·”
“····”
플란은 열쇠를 조용히 응시하다 되물었다·
“뭡니까·”
“아 제가 교수지만 인맥도 나름 있어서·”
바이올렛이 짐짓 거드름을 피웠다·
사실 바이올렛은 세피아에게 부탁했다·
하나뿐인 언니의 부탁이라면서 매달렸고 그 결과 편집부의 남는 공간 하나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 행동한 이유는 간단했다·
플란은 바이올렛의 제자니까 순수하게 응원하는 마음에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당장 사용해도 될 거예요· 깔끔하게 청소도 다 해뒀거든·”
“필요 없습니다·”
“····”
바이올렛이 동상처럼 굳었다·
“···네?”
“마탑 시설을 확보했습니다· 대표들을 삼일간 그곳에서 머무르게 할까 하는데·”
“아···· 마탑···· 마탑 시설····”
바이올렛이 주섬주섬 열쇠를 챙겼다· 날카롭던 고깔모자 끝이 그새 살짝 처친 느낌이었다·
“마탑 시설이 좋긴 하죠···· 네·”
플란은 이내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그러고 보니 바이올렛을 마주치면 할 말이 있었다·
“룬어 연구는 요즘 어떻습니까·”
“룬어···· 룬어 연구요?”
바이올렛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나름대로 진척이 있긴 해요· 나야 뭐 남는 시간에는 종일 그것만 하니까·”
“그렇단 말이지·”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마는 플란의 반응에 바이올렛의 고깔모자가 조금 더 쳐졌다·
그런데 그때·
“본선이 끝나면 같이 연구해볼까 하는데·”
“···!”
바이올렛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저랑요? 어 그러니까· 룬어 연구를?”
“조수 개념은 아니지만···· 일단은·”
“아 그 그럼요·”
바이올렛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세피아가 허겁지겁 플란을 향해 달려왔다· 주황빛 머리카락이 완전히 헝클어진 채였다·
“플란···· 헙 퉤퉤!”
심지어 그중에는 입에 들어간 것도 있어서 세피아가 다급하게 그것을 뱉어냈다·
그리고 깜짝 놀란 얼굴로 플란을 바라보았다·
“혹시 바빠요? 아니지· 바쁘더라도 이건 확인을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플란은 가만히 세피아를 바라보았다·
“마법 학부 대표들이요· 여학생 둘· 기사 학부 쪽에서 스캔들 기사를 냈어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종일 마법에만 매진해도 모자랄 판인데 연애에 신경을 쓰나·
“···상대가 궁금한데·”
일단은 상대가 궁금하다·
마법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면 마법만큼 매력이 큰 인물이 아니라면···· 두 여학생을 향한 한심함이 너무나도 클 듯했다·
“상대 상대요?”
세피아가 검지를 쭉 폈다·
“누구긴요? 플란 학생이지!”
그리고 나를 가리킨다·
“당신! 아 당신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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