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3
이른 아침·
유시아는 일찍부터 개인 훈련을 마쳤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도청 방지 마법을 펼쳤고 누군가에게 감시당하지 않는 것도 확실하다·
오늘은 메르헨 아카데미에 편입한 이래 유시아가 처음으로 ‘활동’을 점검하는 날·
“후우우····”
황녀는 혹시 몰라 심호흡하였다· 첫 점검에서부터 긴장해있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마나의 원리가 깃든 귀마개를 장착했다· 겉보기에는 펴범해도 상호 간의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신묘한 아티팩트다·
잠시 후 연결음이 세 번 들렸고 유시아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반갑습니다·”
─감히 셋째 황녀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그들의 목소리가 유시아는 더없이 만족스럽다· 또한 든든했다·
‘광야(廣野)·’
황실의 정예 인물들을 모집하여 유시아가 직접 일구어낸 조직· 각 구성원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한 명 한 명 전부 유시아가 직접 보고 선출한 인물들이다·
광야의 구성원은 총 15명·
유시아는 그들을 5명씩 세 분야로 나누었다·
세간의 정보를 갈무리해줄 ‘귀’·
마인의 존재만을 집중적으로 탐지하는 ‘눈’·
유시아의 의지를 실천해줄 ‘손’·
셋째 황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선 ‘눈’의 보고를 듣겠습니다·”
“순조롭습니다· 황녀님께서 친히 배포하신 야광 물품들 전부에 마인을 탐지하도록 마법을─”
이어지는 눈과 귀의 보고를 유시아는 신중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가며 경청했다· 다행히 꽤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손’·
이들의 충성심은 더없이 드높다· 그녀가 어떠한 행위를 ‘일’이라고 인식하는 그 순간 그것을 기꺼이 할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있었다·
“이분의 과거 행적을 세세하게 조사하도록 합니다· 또한 경호 임무를 병행합니다·”
그녀는 손에 쥔 자료를 살폈다·
유시아에게 있어 ‘이분’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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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 유디트
* 유디트 가문 출생·
* 검을 버리고 마법사의 길을 택함·
* 잔불의 기사와 남매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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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 당연히 그였다·
“추가로···· 잔불의 기사 스칼렛에 관한 것도 함께 조사하도록 합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황녀님·”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통신은 끝이 났다· 셋째 황녀의 명령에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품을 이는 광야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유시아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플란 경·”
조막만 한 손으로 완성된 인형을 들어 올렸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마탑의 객실 안·
그중에서도 화중세계의 안· 집무실·
나는 그간 모은 아티팩트의 관찰에 열중했다·
자기 계발과 고대 룬어를 향한 연구· 이 두 가지는 그가 결코 게을리하지 않는 것들이며 마침 최종 점검 전까지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먼저 살필 것은 경매를 통해 얻은 기적의 검날 수르트· 검을 휘두를 생각은 앞으로도 없다만 이것이 품은 원소의 힘에는 제법 관심이 컸다·
이 검날을 유심히 살피기를 한 시간·
마침내·
“····”
이것이 지닌 원소의 힘을 갈무리하여 추출하였을 때 나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만족스럽다·”
플라스크에 들어있는 원소의 기류가 무지갯빛으로 일렁인다· 스스로가 품은 정순함을 색으로써 증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곧바로 시계에 덧씌웠다·
경매장에서 얻은 장인이 손수 만들었다던 디자인이 유려하다던 많은 귀족이 탐낸다는···· 그 시계·
대표 중 한 명에게 쥐여주면 꽤 쓸만할 것이다· 이만하면 3만 개가 넘는 금화의 가치는 톡톡히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인·”
뽀득뽀득 곁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경매품을 닦던 마이에브가 입을 열었다·
“이 검날은 어떻게 처분할까요· 수르트요·”
“버려라·”
원소의 힘을 잃은 수르트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바꾸어 말해 더 이상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마이에브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팔면 어때요·”
“빈 껍데기를 누가 산단 말이냐·”
“혹시 모르잖아요·”
“버려라· 마이에브·”
“····”
그런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마이에브는 자꾸만 입맛을 다시면서 말대꾸했다·
“그럼 저한테 버려요· 직접 처분할게요·”
“상관없다만 너한테 경고 하나만 하지·”
나는 염동으로 마이에브의 턱을 붙잡았다· 그녀가 읏 하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움츠린다·
“되팔 생각이라면 멀쩡한 물건처럼 속여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거짓은 내가 용서치 않을 터이니·”
“···그런 짓 안 해요·”
“지켜보지·”
마침내 수락이 떨어지자 마이에브는 수르트의 검날도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지시했던 고대 룬어 연구는·”
“아· 했어요·”
마이에브가 종이 뭉치를 건넸다·
내가 직접 작성한 이론을 토대로 이 세계에서 발견한 룬어들을 연구한 것이 고스란히 적혀있는 자료들이었다·
“···꽤 열심히 했군·”
의외로 성심성의껏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 적어도 플란이 예상했던 것의 두 배는 해냈다·
“네· 룬어들이 담고 있는 힘도 힘이지만 한 번에 묶어보니 지도의 형상을 띈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물론 해독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고대 룬어의 힘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지도의 형상까지· 체통에 맞지 않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흥미가 크게 동한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것이 지도의 목적지에 잠들어있어질 터이니·
“오늘 내로 해라·”
“네?”
“해독· 오늘 내로 해라·”
“뭔····”
허공에서 우리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내 눈을 삼 초 이상 바라보지 못했다·
“···가 추가로 시키실 일은 더 없으세요·”
“받은 일이나 똑바로 하도록·”
“네·”
나는 연구 결과를 반복해서 살폈다· 아득히 어린 시절에 느꼈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들떠했던 감정과도 흡사했다·
이것들을 활용해 자신의 마법 수준을 격상시키고 그것을 토대로 대표들을 군더더기 없이 세공하리라·
“흠·”
한데 체통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고작 룬어 마법 몇 개에 들뜨는 것도 유치하다· 참관 훈련이나 준비하도록 하자·
물론 준비가 철저했으니 어떠한 염려도 없다·
그때·
마이에브가 연구지 한 장을 추가로 내밀었다·
“그런데요 주인 이 부분은 도저히 이해가 어려워요· 주인님의 훌륭한 지혜를 빌려주세요·”
건네받은 연구지의 내용을 살핀 다음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여전히 나를 시험하려 드는군·’
연구지에 담겨있는 고대 룬어의 힘은 폭발 계열로 얼마 뒤 폭발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나는 마이에브의 얼굴을 슬그머니 살폈다·
그녀는 스스로의 암살 계획이 완벽하다 여겼는지 어딘가 모르게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과연 고대 룬어가 대단하긴 하군·”
한낱 마이에브의 수준에서 응용해도 벌써 이만한 폭발 용지를 만들어내어 암살을 시도할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마이에브가 신나서 입술을 달싹였다·
“맞아요· 정말 어렵고 심오하던데요· 그러니 주인 좀 더 가까이서 오래오래 살펴보시고 제게 가르침을 주세요·”
나는 어렵지 않게 술식 전체를 재구성했다·
“가르침이라· 어렵지 않지·”
마이에브가 처음에 의도했던 것· 이 집무실을 통째로 말소해버릴 위력의 ‘폭발’을 나는 ‘매움’이라는 성질로 완전히 뒤바꾸었다·
“이 정도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터·”
“우와· 벌써 답을 찾으신 건가요·”
마이에브가 음흉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짝짝짝 소리를 내서 손뼉까지 친다·
“역시 주인· 대단해요· 혼자 다 하시네요·”
나는 그 술식을 사탕의 형태로 형상화하여 마이에브의 입 안으로 튕겨 쏙 집어넣었다·
“흡?”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지 마이에브의 눈이 불현듯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오물거리면서 사탕을 입 안에서 몇 번 굴렸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
얼굴이 새빨갛게 뒤덮이더니·
“헙 읍 겍 으게엑····”
눈물과 콧물을 질질 짜내기 시작했다·
◈
토벌제 본선 최종 점검·
나는 정각에 맞추어 마탑의 지하에 도착했다· 원래 환혹 세계 내부에서 이루어져야 할 오늘의 훈련은 참관으로 인해 장소를 바꾸게 되었다·
“···넓군·”
예상치를 뛰어넘는 넓이 경기장을 연상케 하는관중석· 두 말할 필요없이 훌륭한 경기장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베키 트릭시···· 루이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있었다·
“아 플란!”
베키가 아는 체를 했다·
“지금부터 최종 점검을 하겠다·”
“어? 루이스는?”
“사전에 양해를 구하더군 곧 도착할 것이다·”
나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대표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종목이 토벌제임을 고려하여 오늘의 점검 역시 전투의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전투·
그게 좋든 싫든 마법사라면 숙명적으로 결코 피할 수 없는 요소· 베키가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한가지 더·”
내 시선이 관중석으로 향했다· 대표 학생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것을 따랐고 다음 순간·
“엥···?”
“교수님?”
그들의 머리 위로 보이지 않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 마음이 이해는 갔다· 교수들의 규모가 족히 여덟 명은 넘었으니·
“최종 점검은 참관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오늘은 승패가 아닌 ‘마력을 잘 숨겼는가’에 중점을 둔다· 이유는 알고 있겠지· 마력을 제대로 숨기지 못하면 일대일 전투도 곧 다대다로 판이 커지는 법이니·”
“····”
“전투 대상으로는 참관인을 제외하고 누구든 지목할 수 있다· 또한 저들이 치명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니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망설이지 말도록·”
마지막으로 나는 트릭시에게 시선을 두었다·
“첫 번째는 트릭시·”
“응·”
“상대를 지목해라·”
“흐음·”
트릭시는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흔들림 없는 눈빛· 그녀는 누구와 전투할지 이미 고민을 마친 모양이었다· 그러나 트릭시가 베키나 루이스를 향해 시선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일 분·
이 분·
삼 분·
정적이 길어지고 트릭시를 바라보는 참관인들의 시선이 조금 의뭉스러워졌다·
고요의 한가운데에서 마침내 그녀가 물었다·
“누구를 지목해도 좋다고 했지·”
“그래·”
“좋아· 그럼·”
트릭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세 걸음 정도를 옮겨서 내게 가까이 붙었다·
호수같이 푸른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눈빛에는 무언의 의지가 충만했다·
“너·”
곁에 있던 대표들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참관인들을 살펴보니 그들 역시 트릭시의 선택을 다소 의아해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좋지 않은 선택이다· 트릭시·”
참관인들의 관찰과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수준이 비슷한 이들끼리 맞붙는 것이 좋기 때문·
그러나 트릭시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조건을 붙일 거야· 좋은 선택이 되도록·”
그리 말하며 소녀는 베키를 흘끗 바라보았다· 당사자인 베키는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한다·
이윽고 트릭시의 시선이 다시 내게 닿았다·
“내가 이기면 그게 무엇이든지 하나 대답해· 대신 내가 지면 뭐든 네가 하라는 대로 할 게·”
“네가 이길 일이 없을 텐데·”
“아니?”
그녀가 내 말을 매섭게 잘라낸다·
그리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없기는 뭐가 없어·”
제 스스로 품었던 호기심의 끝을
트릭시는 오늘 기어코 볼 생각인 듯 했다·
“너 이미 나한테 한 번 기권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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