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명가 길드 (2)
* * *
그 무렵·
흑사자의 곽형석과 곽형수, 그리고 정화 길드의 장시환이 강후에 관련된 소식을 듣고 감탄했던 것처럼·
그와 인연이 있는 또 다른 사람 역시, 이번 청명 수용소에서의 소식을 듣고 놀라고 있었다·
바로 이현석이었다·
군벌 심연의 대장·
반(反) 정화 세력의 수장·
이 정도가 그를 지칭하는 객관적인 시선이다·
보통은 인신매매나 장기매매, 인체 실험, 범죄로 이루어진 정예 조직 결성 등·
정화 길드에 의해 철저하게 조작된 프로파간다의 영향을 받는 중이었다·
서울 시민들에게 있어 이현석은 서울에 일단 들어서기만 하면, 자신들을 학살할 악마였다·
그나마 최근에 심연에서도 조직적으로 선전 활동을 시작하며, 보는 시선이 약간 달라지기는 했다·
그간 착실히 쌓아온 자본과 자료를 바탕으로 심연과 가까운 위치에 설 인플루언서를 대거 포섭한 영향이 컸다·
현재 헌터 그램을 비롯한 모든 헌터 관련 SNS는 완전히 반으로 갈린 대립의 장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정화 길드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신뢰하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불과 몇 개월 전에 비하면 구도가 제법 달라졌다·
예전의 구도가 99대 1이었다면, 지금은 85대 15 정도는 될 느낌이랄까?
심연에서 내는 소리가 꽤 많은 사람의 귀에 어느 정도 박혀 들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화 길드의 악행에 대한 제보는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만 이현석이 이를 곧바로 터뜨리지 않는 것은 좀 더 확실하게 개연성을 확보했을 때, 공론화하기 위함이었다·
대중들은 정보 수용력이 뛰어나지만, 한편으로는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외면하는 경향을 보인다·
게다가 그 반복 정보가 완벽한 신뢰를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되면, 종국에는 아예 무시해 버린다·
이현석은 그런 대중들의 특성을 잘 알았기에 정보의 선후와 개연성이 확보되는 시점을 기다렸다·
어차피 심연을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더 많은 시점이다·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불리한 싸움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고, 오히려 지금은 전보다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기에·
“삼촌! 쉴 때는 좀 쉬지, 이 상황에서도 영상이 눈에 들어와요? 눈도 쉴 땐 쉬는 거라고요!”
탁!
민수현이 이현석의 등짝을 냅다 때렸다·
그녀는 방금까지 이현석의 상처를 감은 붕대를 갈아 주고 있던 차였다·
동두천 전투에서 옆구리에 총상을 입은 이현석은 현재,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치료 중이었다·
그의 간호는 민수현이 자원해서 전담했고, 그의 옆에는 남자 수행원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이현석의 상처를 살피며 물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웬만하면 당분간은 최전선에 나서는 것은 조심하시지요· 적호대가 장시환을 노리는 것만큼, 정화 길드도 형님의 목숨을 1순위로 노립니다·”
남자의 말에 이현석이 웃었다·
그의 말뜻은 십분 공감하나, 그럴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복합적인 감정의 웃음이었다·
“날 믿고 바라보는 녀석들만 수천이야· 뒤로 물러나서 지도만 펼쳐놓고 손가락질로 전쟁 놀음하는 건 내가 질색이야·”
“형님, 그래도····”
“적당히 움직일만 하면 바로 나갈 거다· 역시 정화 길드야· 놈들이 있기에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삼촌, 그거 알죠? 삼촌이 그런 말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전부 다····”
“미친놈처럼 본다고?”
“잘 알고 계시네요!”
“안다· 알아· 하지만 정화 길드를 상대하려면 미친놈이 될 수밖에 없어· 웬 줄 알아? 장시환은 더 미친놈이거든·”
이현석의 말에 민수현은 에휴, 하고 한숨을 쉬곤 항생제와 소염제를 챙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현석이 다시 깔끔해진 붕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앞에 있는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상오야· 그래도 네가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내 곁으로 와줘서 참 도움이 된다·”
“면목없습니다·”
“소식은 늘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홍천 해방구에서 데스 매치를 여러 번 뛰었다지?”
“예· 전국선과의 승부가 데뷔전이었습니다·”
“배당이 3배였는데 너한테 60억 원을 한 번에 건 헌터가 있었다면서·”
“네· 누군지 몰라도 저한테 60억 원을 걸어서 180억 원을 수령했고· 그대로 다음 매치에 또 제게 걸어서 360억 원으로 불려갔다고 하더군요·”
강후가 정체를 최대한 숨기면서 활동하던 시절이었기에 박상오는 그 헌터가 강후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마 알았다면, 둘 다 이 자리에서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강후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아무튼 네가 일본으로 가지 않을까 했는데, 내 옆으로 와줘 참 고맙게 생각한다· 큰 힘이 돼·”
“아시잖습니까· 저도 정화 길드를 형님만큼이나 싫어한다는 것· 많은 도움을 드릴 겁니다·”
“그나저나 상오야· 너는 신강후 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네가 사람 보는 눈은 꽤 있는 녀석이라, 의견을 듣고 싶은데·”
박상오를 보는 이현석의 눈빛이 은근했다· 신뢰의 눈빛이다· 어떤 말이든 믿는다는 마음의 눈빛·
꽤 오래 생각에 잠기지 않을까 했던 이현석의 예상과 달리, 박상오는 바로 답을 내놨다·
“예전에 수현이를 신강후 님이 구했다는 얘기를 저는 그때 이미 듣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제가 그때 말씀드렸었죠· 이유 불문하고 김천 해방구 한복판에서 수현이를 구한 암살자라면, 앞으로는 둘 중 하나가 될 거라고요·”
“단명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이름을 날리거나·”
“예, 맞습니다· 그리고 전자는 아닌 듯하니, 후자로 가고 있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신강후 님 같은 사람이 정화 길드 편에 서게 되면, 대단히 골치가 아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김천 해방구에서 수현이를 구했을 때만 해도 저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이번에도 똑같군· 청명 수용소를 내부 침투해서 소장의 목을 딸 줄이야·”
“제가 아는 신강후 님은 소속도 없고, 선호하는 세력이나 호감을 밝힌 인물도 없습니다· 중립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바꿔 말하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사람이죠·”
“장시환의 손이 뻗치는 걸 피할 수 없겠지·”
“예, 형님· 이미 신강후 님과는 접점이 있지 않습니까? 연락을 기다리지 마시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 보시지요· 조커는 들고만 있어도 위협적인 패가 되잖습니까?”
“조커라····”
“형님이 신강후 님을 걱정하고 아끼셔서 의도적으로 연락을 자제하고 계신 것은 압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럴수록 신강후 님으로 하여금 줄을 확실히 서게 해야 합니다·”
“적이 되든지 아군이 되든지?”
“예· 애매한 포지션에 있는 사람은 계산이 어렵잖습니까· 차라리 명확하게 적이든 아군이든 확정이 되는 것이 낫지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생각해도, 강후는 참 속내를 알 수 없는 헌터였다·
전세혁 같은 헌터는 대놓고 이클립스가 싫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수준이다· 호불호가 확실하다·
하지만 강후는 이클립스와의 악연을 제외하면, 어디에 더 마음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강후에 대해 관심을 더 가지게 될 정도면, 장시환이라고 해서 다를 리 없다·
종종 한 명의 헌터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게임 체인저가 되는 일도 있다·
이현석은 강후가 아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화 길드의 편에 서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그와 같은 유능한 암살자를 적으로 두게 된다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만 졸이면 뭘 하겠는가? 박상오의 말대로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을 듯했다·
그래야 강후와의 관계에서는 유독 수동적인 상황을 능동적인 국면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현석이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마음만 먹으면 강후에게 연락이 닿는 것은 금방이니까·
* * *
명가 길드와의 만남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도착한 장소에는 이미 관계자들이 모두 도착해 있었고, 강후에게로 시선이 전부 쏠렸다·
인원은 총 20명쯤·
늑대인간 최호수, 주술사 연수아, 기공수 장태진의 경우에는 구면이었다·
그 외에도 길드 마스터 장선영과 부 길드 마스터인 백성호가 있었고, 총원은 20명쯤 됐다·
악수를 먼저 청한 것은 역시나 길드 마스터인 장선영·
금발의 쇼트커트가 인상적인 그녀는 길드원들 하나하나를 모두 다 강후에게 인사를 시켰다·
이참에 확실히 눈도장이라도 찍어 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그렇게 모두와의 인사가 끝나고 난 다음에 장선영이 현재 상황에 대한 운을 가볍게 뗐다·
“현재 해외에 용병으로 나가 있는 길드원이 10명· 던전 공략으로 부재중인 길드원이 10명이에요·”
“도합 40명쯤 되시는 거군요·”
“맞아요· 규모가 좀 작죠?”
“괜히 소수 정예가 아니잖습니까·”
장선영의 겸손에 강후가 고개를 저었다·
명가 길드 소속의 길드원 중에 레벨이 300 미만인 헌터는 단 한 명도 없다·
이걸로 얘기는 끝난 셈이다·
레벨 100 미만 헌터를 수백 명을 보유한 길드보다 실제 전투력은 명가 길드가 훨씬 더 높다·
이것이 바로 레벨과 스탯의 차이에서 오는 필연적인 간극이다·
메꾸기가 쉽지 않으며, 유일한 방법은 머릿수지만 그것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장선영이 강후를 향해 다시 한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직접 하지 못했던 말을 전했다·
“길드 전체를 대표해서 다시 감사드려요· 신강후 님 덕분에 해영 길드의 은밀한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했을 뿐인 거죠· 저는 제게 이로운 그림을 생각했을 뿐입니다·”
“해영 길드보다 저희 길드를 더 이롭게 생각하셨다는 뜻이잖아요? 그걸로도 너무 감사드릴 일이죠·”
“제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길드를 선택했다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네요·”
강후가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는 말의 방향성을 다시 중간으로 끌고 왔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해영 길드에 호감 같은 것은 없다· 정화 길드와 한 몸인데 그럴 리가·
다만 공개적, 공식적으로 명가 길드에 대한 호감을 보일 필요도 없는 만큼 중심을 잡을 뿐이다·
“그럼··· 좀 더 얘기를 하실까요? 자, 다들 각자 일들 봐· 우리는 신강후 님과 얘기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장선영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내 길드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고, 장선영은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 불투명 결계를 만들었다·
방음은 물론,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호 결계였다·
자리에 남은 것은 장선영과 장태진, 그리고 박동재와 강후였다·
박동재는 명가 길드 사람은 아니지만, 강후의 핵심(?) 측근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남았다·
장선영과 장태진의 요청이기도 했고, 강후 역시 자리를 벗어나려는 박동재를 붙잡았다·
네 사람의 좀 더 은밀한 대화가 된 자리에서 먼저 운을 뗀 것은 역시 장선영이었다·
그녀가 내뱉은 첫 화두·
그것은 강후의 입장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저희 길드의 활동 거점을 경기 북동부 권역, 강원도 권역으로 옮기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