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외전 38화>
외전 38화
‘의외군·’
성지한은 자신의 앞에서 바로 머리를 박은 이토 시즈루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토 시즈루·
그녀가 지니고 있는 기프트 ‘편집’은·
그 어떤 재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권능이었다·
‘그러니 내가 무신으로 힘을 보였다고 해도 이렇게 바로 저자세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저항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거기다 검왕도 안 데리고 있네·
성지한이 물끄러미 이토 시즈루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꿍꿍이지?”
“네?”
“네가 이렇게 순순히 굽힐 사람이 아닌데· 왜 저항하지 않지?”
“무신께 제가··· 어찌 저항하겠어요? 이 세상의 주인이신데·”
그러면서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는 시즈루·
성지한은 그녀의 말을 듣곤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이 세상의 주인이라니··· 말에 뼈가 담겨 있군· 뭘 알고 있지?”
“저는····”
성지한의 질문에 침을 삼킨 시즈루는·
“살려만 주신다면 제가 아는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리며 성지한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옛날에도 생존 욕구는 대단하긴 했지·’
성지한은 검왕이랑 시즈루를 찾느라 고생했던 걸 떠올리다 윤세아를 돌아보았다·
사실 살려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직접적 피해자인 윤세아의 의중을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괜찮나? 잠깐 살려 둬도·”
“아? 네· 저야 괜찮아요· 그냥 검왕이랑 백년해로 하라고 해요·”
“백년해로까지?”
“네··· 그냥 저쪽에 관심을 두고 싶지가 않아서요·”
검왕이랑 시즈루 둘이서 지지고 볶던 말든 아예 관심 끄고 살겠다 이건가·
그래도 계속 살려 두면 신경이 쓰일 존재니·
‘이 세계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엔 제거해야겠군·’
성지한은 그렇게 시즈루를 잠깐 살려 뒀다 미션 클리어 직전에 없애기로 결심했다·
“알았다· 살려는 두지·”
“저· 근데 아까는 잠깐··· 살려 두신다고 한 것 같은데·”
“네 협조 여하에 따라 잠깐이 계속이 될 수도 있지· 아니면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고·”
“앗· 네···!”
“그럼 머리 제대로 들고 이야기해라·”
그 말에 시즈루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머리를 들었다·
몇 번이고 머리를 박아서 그런지 시뻘게진 이마·
그래도 그것 제외하고는 경국지색의 미모는 여전했다·
-이야 역시 저번 가짜랑 다르긴 다르네···
-이게 찐이구만? 이쁘긴 이뻐
-뭔가 분위기부터가 다름 ㅇㅇ
-지금이라도 싹을 잘라야 하는 거 아닌가여 근데 이 여자 위험할 텐데 -뭐 근데 위험해 봤자··· 성지한 님한테 비비겠어?
-하기야 ㅋㅋ
예전에 뿌리까지 뽑으려고 일본을 뒤졌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시즈루와 격의 차이가 너무 나서 그렇게 걱정할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성지한은 채팅창을 잠깐 보다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다·
“먼저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이야기는 뭐지?”
“···제 기프트는 ‘편집’입니다· 플레이어의 데이터를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죠·”
성지한은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서포팅 기프트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하는 ‘편집’·
그거로 시즈루는 얼굴부터 뒤바꾸고 일본 정계의 흑막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무신께서 검왕을 쓰러뜨린 후부터 ‘편집’을 할 때면 제게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빛?”
“네····”
빛이라면 설마 백광인가?
성지한이 그렇게 추측을 하고 있을 즈음·
시즈루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후부터 이 세상의 진면목이 보였습니다·”
“진면목이라니?”
“‘무신 동방삭’이라는 개념은 무신께서 활동하신 후부터 생겨났으며··· 외계의 존재 또한 허상이었다는 것을요·”
무신하면 ‘동방삭’이라고 알고 있던 이 세상·
그것도 성지한이 활동한 이후부터 생겨난 개념이라는 건가·
“그리고····”
시즈루가 말을 이어가려 할 때·
[시즈루!!! 여기 있나!!!]
문 밖에서 검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작 시즈루는 한국말을 하는데 검왕은 일본말을 하는 상황·
‘가관이구만·’
성지한이 어처구니 없어할 즈음·
쾅!
문이 부서지더니·
두 눈이 시뻘게진 채 나타난 검왕은 성지한을 보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 무신···! 네가 왜 여길!!! 설마··· 나의 시즈루를 빼앗으려고?!”
딸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성지한과 시즈루만 번갈아 바라보면서 눈이 뒤집힌 검왕·
“가만히 좀 있어라·”
성지한이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자·
쿵!
검왕의 몸이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이· 이익···! 시 시즈루는 안 된다···!!! 그녀만큼은! 이 노옴!!!”
성지한 앞에서 무릎 꿇은 시즈루랑 제압당해 쓰러진 검왕·
누가 보면 이쪽이 악당인 줄 알겠네·
윤세아는 처절하게 절규하는 검왕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성지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삼촌· 그냥 저 입도 닫아 버려요· 시끄러우니까·”
“그래야겠군·”
“읍읍!!!”
입까지 틀어 막힌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검왕·
그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 검왕···
-어디까지 추해지실 겁니까···
-시즈루 보다가 저런 검왕 보니까 눈 배리네
-이쁜 것만 보죠 ㅇㅇ;
-그냥 좀 죽여 달라니까 제발 응?!
-저 새끼 좀 없애!!!
윤세진의 절규가 채팅창을 도배했지만·
‘벌써 없앨 순 없지·’
성지한은 꿈틀거리는 검왕에 청을 보내보았다·
스탯 청의 권능을 생각하면 세뇌가 풀려야 정상인데·
“읍! 으읍···!!!”
그는 천년의 사랑을 빼앗긴 것처럼 온몸으로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검왕의 세뇌는 왜 안 풀리지?”
성지한의 물음에·
“아 저도 미치겠어요···!!!”
시즈루가 자신의 몸을 양손으로 감싼 채 검왕을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 *
“무신께서 저희를 호출했을 때··· 혹시나 해서 그를 더 편집했습니다·”
던전 포탈 파훼법 공개를 앞두고 이토 시즈루랑 검왕을 공개적으로 소환했던 성지한·
시즈루도 바보는 아니어서 혹시나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국으로 보내기 전에 검왕의 집착 정도를 더 강화시켰다·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집착··· 이건 그가 다시 귀국하면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고 했어요· 저를 갈구하지만 각자의 생활은 가능한 정도의 강도로요·”
“흐음·”
“그런데··· 그는 수정되지 않았어요·”
“응? 집착을 강화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반문에 시즈루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네· 그러니까요· 강화는 되지만··· 약화는 되지가 않았어요! 한번 수치를 올리고 나면 떨어지지가 않아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느낌이라····”
“읍· 읍···!”
“전 통제가 되지 않는 검왕과 거리를 둬야겠다고 판단하고 홋카이도까지 왔어요· 그런데 그가 여기까지 따라올 줄이야····”
무슨 스토커 보듯 검왕을 바라보는 시즈루·
-아니 지가 편집할 땐 언제고 ㅋㅋㅋㅋ
-ㄹㅇ 갑자기 피해자 코스프레여 ㅋㅋ
-근데 좀 검왕 무섭긴 하다 야;
-막상 당하면 쫄리긴 할듯··· ㄷㄷ
-그것도 일반 성인 남성도 아니고 검왕이잖아 세계 최강 괴물이니;
성지한에 의해 빛이 바래긴 했지만·
어쨌든 검왕은 현재 세계 최강의 전사 중 한명이었으니·
그가 편집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시즈루 입장에선 제어할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저··· 무신님·”
시즈루는 일어나서 검왕의 시선에 안 보이게 자신을 가린 후·
손가락으로 검왕을 가리키다가·
슥· 슥·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대신 죽여 달라고?-와 미쳤넼ㅋㅋㅋ
-얘도 가지가지 한다니까 ㅋㅋ
-하··· 시즈루···
시즈루의 손절에 어처구니 없어하는 시청자들·
성지한도 황당하긴 매한가지였다·
검왕을 그렇게 써먹은 주제에 통제가 안 될 거 같으니 바로 팽하네·
‘뭐··· 굳이 내가 똥을 대신 치워 줄 필욘 없지·’
본인이 데려갔으니 부작용도 자신이 감수해야 할 거 아니겠나·
“세아가 아까 둘이 백년해로하라는군· 그러니 그 제스처는 못 본 걸로 하지·”
“그 그러지 말고···! 아· 제가 좋은 것 드릴게요!”
그러면서 시즈루가 성지한의 손을 잡으려 하자·
탁!
“어딜 손대려 그래?”
옆에서 검왕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윤세아가 시즈루의 손을 쳐 냈다·
“아줌마· 저 사람이랑 놀아요· 여기에 찝쩍거리지 말고·”
“아 아줌마···?”
“아니에요?”
그러면서 시즈루를 노려보는 윤세아·
“아· 그냥 삼촌한테 당신 죽여 달라고 할까요? 아니 생각해 보니 제가 직접 해도 되겠네요· 당신 때문에 고생한 게 갑자기 떠올랐거든요·”
쾅!
그러며 윤세아가 발을 찍자·
현관 바닥이 일제히 금이 갔다·
“머리가 단단할까요··· 이 바닥이 단단할까요?”
그러며 서늘하게 웃자·
시즈루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윤세아가 정말 말뿐이 아니라·
까딱하면 자기 머리를 짓밟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오· 전사 윤세아 좀··· 센데?
-궁수보다 저게 적성이었던 거 아닐까?
-하긴 삼촌 아빠 다 독보적인 전산데 그럴 수도···
-아니 근데 무신님 무신님하면서 어려워할 땐 언제고 엄청 싸고 도는데 ㅋㅋ-짭세아가 진짜보다 삼촌 더 좋아하는 거 아냐?
-아니거든요!?!?!?
윤세아의 변모에 시청자들이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시즈루는 식겁하며 급하게 대답했다·
“아 알았어요! 가까이 안 갈게요· 진정하세요· 백년해로하라고 하셨잖아요· 살려 주셔야죠!”
“···하· 그래서 좋은 건 뭔데요?”
“네?”
“좋은 거 준다면서요·”
“그건· 저 사람····”
스윽·
검왕을 죽여야 줄 수 있다는 거였다면서 다시 목 베는 제스처를 하는 시즈루였지만·
“야· 그냥 내놔·”
윤세아가 발을 살짝 든 채 얘기하자·
“···아· 진짜·”
시즈루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검왕을 죽이는 건 저쪽이랑도 이해관계가 맞을 줄 알았는데·
대체 왜 살려 두는 거야?
그래도·
“알았어요····”
그녀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YES밖엔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몰린 이상·
어설픈 딜을 하려 해 봤자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거예요·”
스윽·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만지자·
번쩍···!
그녀의 눈에서 백색의 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건····”
존재감이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빛의 권능 백광인데?
성지한이 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지이잉···!
시즈루의 눈에서 빛이 빠져나오더니·
작은 빛무리가 되어 성지한의 앞에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지이이잉····
[백광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성지한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확실히 빛을 ‘백광’이라고 규명하는 메시지·
‘백광이 왜 여기에···?’
윤세아가 1회차의 그녀인지 ‘분석’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백광·
그게 눈앞에 손만 뻗으면 닿을 자리에 있었다·
그가 빛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자·
[정말로 백광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다시 한번 그의 의사를 확인하는 시스템 메시지 마지막에·
마치 그를 비웃듯·
웃는 이모티콘이 같이 떠올랐다·